[전통주] 2020년 6월 전통주 갤러리 시음회
코로나 때문에 강남 전통주 갤러리를 통 못 갔었는데, 드디어 이번달은 다녀왔다!
이번달 시음주의 테마는 경상북도.
경상북도 소재 양조자에서 만든 탁주 1종, 약주 2종, 과실주 1종, 증류주 1종 총 5종을 시음했다.
1. 은자골 생 탁배기
경북 상주에 있는 은척양조장에서 만든 5%짜리 탁주다.
멥쌀, 누룩, 물을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설명을 들어서 설마 아스파탐이 안 들어갔나 싶었는데
양조장 홈페이지의 제품 소개를 보니 아스파탐이 들어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밸런스가 적당하게 잘 잡힌, 굉장히 무난하고 평범한 막걸리였다.
맥주로 치면 마치 라거맥주같은...!
라거 맥주라고 단어를 듣는 순간 사람마다 머릿속에서 바로 떠오르는 아주 무난한 맛의 라거 맥주들이 있을 것이다.
딱 그런 포지션. 치킨이든 피자든 국물요리든 적당히 무난하게 어울리는 그런 라거 맥주 느낌이다.
추천 페어링: 떡, 전
2. 문경 호산춘
경북 문경에 있는 장수 황씨 종가에서 빚었던 술이다. 한마디로 가양주. 약 200여년간 이어져 내려온 술이다.
18도의 약주다.
황의민(黃義民)이라는 사람이 자기 시호인 "호산"과 봄 춘자를 따서 호산춘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18호.
주재료 중 하나가 찹쌀인데, 찹쌀에는 전분기가 많아서 결과적으로 단맛이 강하다.
특이하게도 재료에 솔잎이 들어가는데, 향이나 건강에 이로운 효과 같은 걸 위해서 넣은 게 아니라
순전히 술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솔잎을 넣으면 어떤 좋은 작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 한산소곡주가 얼핏 생각났다.
아무래도 한산소곡주도 찹쌀이 들어가고, 아주 달짝지근하니까.
하지만 한산소곡주가 훨씬 더 단맛이 강하다.
달달한 맛인데, 생크림 케이크나 바닐라 라떼의 그런 강렬한 단맛은 아니고 약밥같은 끈적거리고 무거운 단맛.
한산소곡주는 좀 부담스럽지만 적당히 도수 있고 달달한 약주가 먹고 싶은 사람이라면 좋아할 것 같다.
추천 페어링: 육포
3. 교동 법주
경북 경주의 최씨 가문의 가양주. 17도의 약주이다. 국가무형문화제 제86-3호.
최부자댁에 시집온 며느리들에게 대를 이어서 전수되었다고 한다. 3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산소곡주를 굉장히 맛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교동법주를 처음 먹어보고 머리 위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해보고싶다." 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주재료에 찹쌀이 들어가는 만큼 달달하고, 향은 꼭 곡물을 짓이겨서 꿀을 살짝 발라놓은 것 같다.
중간부터 후반까지 되게 도톰한 편이고 단순한 듯 하면서 재미있다.
피니시가 특이했는데, 마치 콩송편을 먹고 난 뒤 입천장에 남는 느낌과 비슷했다.
추천 페어링: 육회
4. 산머루 크라테 스위트
경북 김천에 있는 수도산와이너리에서 만든 11.5%의 과실주,
향은 화학약품 향이어서 좀 아쉬웠다.
항아리에서 숙성한 뒤 아메리칸 오크통에서 숙성했다고 한다.
이름에 스위트가 들어가있지만 사실 그다지 달진 않다.
"와인치고 이만하면 단 거 아니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기대한 게 아이스와인 정도의 당도였기 때문에 좀 아쉬웠다.
음식이랑 먹기에는 바디감과 개성이 좀 약하고,
그렇다고 단독으로 쉽게쉽게 마시기에는 당도가 낮은 느낌이었다.
안주 없이 먹기에 무리는 없을 것 같은데, 다소 미묘했다.
이전에 먹었던 술들이 (호산춘, 교동법주) 다 너무 달아서
유달리 당도가 낮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추천 페어링: 초콜릿
5. 문경바람 오크
경북 문경 소재 제이엘에서 만든 40도의 증류주.
문경에서 난 사과로 와인을 만들어서 두 번 증류한 술이다.
사실 문경바람 오크를 먹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약 2년 전쯤에 먹어봤었는데, 다른 향은 전혀 못 느끼겠고 오크향만 강렬하게 느껴져서 실망했었다.
술이 "나는 오크통에 있던 술이에요!" 하며 빼액 소리지르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술을 삼키고 나니 혀끝에 과실의 뉘앙스가 분명히 느껴졌다.
2년 전에 먹었던 문경바람 오크보다 훨씬 좋았다.
다만 역시 "중간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프로 그려보면 대충 이런 느낌?
40도의 비교적 높은 도수와 강한 오크향을 바탕으로 맛이 강렬하게 혀를 휘감았다가 곧바로 사라져버린다.
여운은 괜찮은데, 좀 더 향이 복잡하고 재밌었으면 좋겠다.
추천 페어링: 견과류